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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섯찌유 2025. 5. 15.

한양대학교(漢陽大學校, Hanyang University)는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성동구 행당동과 사근동에 걸쳐있는 서울캠퍼스(본교)와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사동에 있는 ERICA캠퍼스(분교)로 이루어진 사립 대학이다. 1939년 7월 김연준이 동아공과학원으로 설립, 1942년 동아고등공업학원으로 인가되었다. 1945년 8·15광복과 함께 교명을 건국기술학교로 바꾸었으며, 1947년 재단법인 한양학원을 설립하여 한양야간공업대학으로 개편하였다가 대학기관인 1948년 한양공과대학으로 승격하였다. 1959년 종합대학으로 개편하면서 현재의 교명으로 개칭하였다.[2] 2021년 기준으로 76개국 777개 학교와 자매결연, 복수 학위 및 교환 학생 등의 국제 교류를 하고 있다.[3] 이공·인문·의예·예체능 관련 학과가 종합적으로 편제되어 있으며 7개의 전략 학과·학부를 운영하고 있다.[4] 한국 안팎의 대기업[5]과 연구소[6]를 연계하는 산학연 협동 과정이 개설되어있으며, 100명 규모의 로스쿨이 개설되어 있다.[7] 세계 대학에서 뉴욕주립대 폴리테크닉 나노스케일 과학공학대학에 이어 두 번째로 300mm급 반도체 공정장비를 갖추었다.[8] 이화학연구소의 아시아연구네트워크 사업부가 있고,[9] 2009년에는 일본의 아소 다로 총리가 방문하였다.[10] 연혁 해당 문단에서의 연대기 구분은 대학 기록실의 분류를 따랐다. 1939년 7월 김연준 (2008년 1월 7일 93세의 나이로 사망)이 서울특별시 서대문구에 세운 동아공과학원을 모태로 한 사립대학이다. 1942년 동아고등공업학원으로 인가된 후 해방과 함께, 건국기술학교로 교명을 변경 하였으며, 1948년 재단법인 한양학원 인가와 함께 건국기술학교를 한양공과대학으로 승격, 초대학장에 김연준 박사로 했다. 그 후 한국 전쟁 이후 서울 수복 후, 현 교지인 서울특별시 성동구 행당동 17번지에 교사를 건립한다. 1959년 한양공과대학을 교육법에 의해서 종합대학으로 승격, 현재의 교명으로 승격하였으며, 초대 총장에 김연준 박사가 취임하였다. 1978년 경기도 반월공업도시(현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사3동)에 반월캠퍼스를 신설하였다. 1995년에는 경기도 구리시에 의과대학 부속 구리병원을 개원하였다. 2009년 분교인 안산 캠퍼스의 명칭을 클러스터형 산업중심대학을 뜻하는 에리카 캠퍼스(ERICA: Education Research Industry Cluster at Ansan)로 변경하였다.[11] 2025년 기준으로 제16대 이기정 총장이 역임중이다.[12] 1939년 ~ 1948년 동아공과학원 설립부터 초대 이사장 취임 전까지를 요람기라 칭한다.[13] 1939년 7월 초대 김연준이 현 서울시 종로구터에 동아공과학원을 설립해, 2년제 3개과로 개교하게 되었다. 1942년 동아고등공업학원으로 교명을 변경하였으며, 일제의 교육 정책에 따라 신입생 모집 금지령을 당해 1944년 폐교하게 되었다. 이후 1945년 광복후 건국기술학교를 설립하였으며, 1946년 재단법인 한양학원을 설립하고 김연준이 이사장에 취임했다. 이후 소화공과학교를 인수하여 한양공업학교를 설립하였다. 이후 건국기술학교를 개명, 승격등의 과정을 거쳐 한양공업대학관으로 승격하였으며, 재단법인 한양공과대학 설립인가를 받아 4년제 정규대학으로 승격하게 되었다.[1] 1948년 ~ 1959년 초대 김연준 취임부터 한양대학교 승격인가 전까지를 성장기라 한다.[13] 1948년 초대 법인 이사장에 김연준이 취임하였으며, 이후 몇 가지 학과 개편과 부설 중등교원양성소를 설치하였다. 1950년 발발된 한국 전쟁과 함께 부산시 완월동의 가교사에서 수업을 하였으며, 1952년에는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제1회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1953년 대학원 설립 인가를 받아 설치하게 되었으며, 1953년 서울 수복 후 성동구 신당동 인근의 임시 교사에서 수업을 하고 이후 현 한양대학교가 행당동으로 이전 및 교사를 신축하게 되었다. 1955년 자연과학 관련 학과 신설 및 정원 확대를 하게 되었으며, 이후 여러 이공계 관련 학과들을 신설 및 확장하였다.[1] 1959년 ~ 1978년 종합대학 한양대학교 승격인가 후부터 반월캠퍼스(현 ERICA캠퍼스)설립 전까지를 발전기라 한다.[13] 1959년 종합대학인 한양대학교로의 승격이 인가되었으며 3개 단과대학[14] 19개 학과 및 이부대학, 대학원으로 개편하였다. 1959년 교내 언론기관인 한양대학보를 창간하고 중앙도서관을 준공하였다. 이듬해인 1960년에는 방송기관인 HUBS(現 한양대학교 교육방송국의 모체)을 개시하였으며, 같은 해 예체능 관련학과[15]를 인가 및 신설하였다. 그 해 일어난 4.19에 학생들이 가담해 사상자가 나기도 하였다[16]. 같은 해 학생회 및 단과대학 학생회, 총동문회가 구성 및 창립 되었다. 또한 이 시기에는 학교의 재정확보 정책과 학생들의 등록금 인하요구가 대치하던 과정 중 성동경찰서 난입사건이 일어나기도 하였다.[17] 1961년에는 ROTC교육훈련을 시작하였으며 이후 5.16등으로 혼란했던 사회상황 때문에 학과 및 정원 재조정이 빈번했다[18]. 1965년 일본 와세다 대학과 상호 학술교류협정을 체결하였으며, 1968년에는 계절학기를 도입하였다. 1969년에는 現 학칙이 승인되었으며 이후 수회의 학과 및 정원 조정과 건물 준공 및 용도변경, 해외대학과의 자매결연 협정[19] 이 있었다. 1972년에는 계엄령선포로 인해 45일간 휴교한 적도 있었으며, 같은 해 부속병원을 400병상 규모로 개설하였다. 1973년에는 초대 김연준 총장이 물러나고 2대 총장 이해남 박사가 취임하였다. 1975년에는 중국의 교육기관과 자매결연[20]을 시작했으며, 1976년, 2009년까지 사용[21] 했던 UI(University Identity)를 공표하였다.[1]